산행후기 |
♣구름위의 주왕산♣
Ⅰ 가는 길 쌍문동-(중부-영동고속도로)-원주-(중앙고속도로)-제천-단양-영주 -(중앙고속도로)-남안동-청송-주왕산 민박촌
Ⅱ 오는 길 주왕산-청송-안동-(중앙고속도로)-풍기-제천-(중앙고속도로)-원주 -(영동고속도로)-여주-퇴촌-서울
Ⅲ 후기 ▲민박집에서 5시에 일어나 부지런을 떨며 어제밤에 해놓은 밥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한 후 민박집을 나섰다. 아예 차를 주차장을 지나쳐서 빈 공터에 주차시켰다. 주차료가 소형차가 4,000원이라니 장난이 아니다.
매표소로 향하면서 좌우에 즐비한 곳에 위치한 명일여관(054-873-2934)에서 막걸리 맛을 보고 가란다. 식사를 이 곳에서 해결하면 잠자리는 공짜란다. 민박도 2만원 정도에 해준단다. 3만원에 민박을 했으니 에고 아깝다.
6시40분경에 지척에 있는 매표소에는 벌써부터 관리인이 기다리고 있다. 이른 아침이라 없을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주왕암에서 방송 촬영이 있다고 빨리 나온 것이란다. 입장료가 1인당 2,300원에는 물론 대전사 관람료 1,000원이 포함된 금액이다.
고요한 대전사 절경을 새벽에 관람한 후 수통에 물을 채우고, 후문으로 나서니 100m쯤에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은 자하교 쪽으로 가는 평탄한 길이고, 우측은 주왕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로 들어섰다. 이미 아침은 밝을때로 밝았고, 나무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무척이나 싱그럽다.
주왕과 마장군의 전설이 곳곳에 배어있는 유서 깊은 주왕산은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있는 국립공원이다. 1976년 3월에 12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단다.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 때문에 예부터 바위가 병풍을 펼친 듯하다 하여 석병산(石屛山), 옛부터 난리가 날 때마다 이곳에 피난 온 사람들이 많고 선유 선사들이 이 산에 살았다 하여 대둔산(大遁山), 신라왕족인 김주원이 이곳에 있었다하여 주방산(周放山)으로 불리다가 그 후 고려때 나옹스님이 주왕의 전설 때문에 주왕산(周王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단다.
중국 당나라 덕종 12년에 晋나라 왕손인 주도(周鍍)가 진의 회복을 꿈꾸며 군사 1만명을 이끌고 후주천왕(後周天王)을 자청하고 반기를 들고 수도 장안을 공격하던 중 곽자의에게 패하게 되자 요동을 통하여 신라땅에 도망을 왔다고 한다.
그 후 강원도지역을 거쳐 진성(지금의 진보)땅에 다다른 주왕은 석병산이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숨어 들었으며, 인근 주민의 식량을 약탈하는 등 노략질을 일삼게 되자 신라왕은 마일성 장군과 그의 형제들에게 토벌을 명하니 주왕은 기암에 기를 꽂고 마씨형제들과 싸웠으나 크게 패하여 주왕굴에 숨어있다가 생을 마쳤으며 그에게는 대전(大典)이라는 아들과 백련(百蓮)이라는 딸이 있어서 현재 주왕산의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르는 등산로는 국립공원 답게 나무계단으로 잘 꾸며져 있어서 오르기 힘들지 않고, 얼마간 오르니 등뒤 계곡쪽으론 운해가 덮어져 있고, 그 위로 건너편 바위들이 걸쳐져 있어 꼭 구름바다에 잘린 바위들 마냥 솟아오르는 아침햇살에 자태를 뽐내 보인다.
능선을 따라올라 정상까지엔 1시간이면 넉넉하게 도달할 것 같고, 여유를 잡고 경치를 감상하면서 노닥거리니 1시간40여분이 소요된다. 아직은 단풍계절이 일러서 10월 중순이 지나야 제맛이 날 것 같다.
정상은 여늬 정상같이 정상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저 헬리곱터장 같은 모습으로 H자를 동그라니 표시해두고 잡초속에 묻혀 있는 꼴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등산로 옆에 수 십년 수 백년을 살았음직한 많은 노송들이 송진 채취를 위한 무지몽매한 인간들에 의해서 가슴을 난자 당하여 말라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유난히 많은 소나무들이 쭉쭉빵빵하게들 자라서 늘씬한 미모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송이 채취를 하는 심마니 베낭을 맨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내년에 이곳으로 송이 채취하러 와볼까나. 사창골에 다다르니 합수점 근처 계곡에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서 노닌다. 많은 물고기에 신기하여 음식 조각을 던지니 흩어져 있던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새까맣게 모여드는 모습이 꼭 한 송이 꽃 핀 모양으로 재미를 더해준다. 피리들인지 산천어인지 어종은 구분을 못했지만 초장을 준비하고 낚시대를 드리우면 부러울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이 꼴~깍...
저 아래로 대피소인 듯한 건물과 인파가 눈에 들어온다. 다리를 건너기전 계곡쪽 좌측으로 난 제2폭포로 향하니 동굴속을 거니는 것 같다. 2단식인 제2폭포는 자그맣게 중간에 웅덩이를 만든 듯하다. 가파른 웅덩이 옆 벽을 타고 폭포 중간에 오르니 웅덩이가 꽤 깊어 보인다.
제2폭포를 나와서 대피소 앞 다리를 건너니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를 풀어놓고 산 열매를 팔고 있다. 벌어진 껍질 속에 검은 씨앗이 박힌 누에 같은 흰 열매가 있는 조금은 신기하게 생긴 것이 있어서 무어냐고 물으니 <어름>이라는 열매란다. 비싸서 사먹지는 못하고 눈 맛만 보는 것으로 안녕. 경동시장에선 많이 싸단다.
대피소를 지나 내려오는 길은 마치 춘천의 길목에 위치한 삼악산의 등선폭포가 있는 곳의 풍경 같다. 주왕산쪽이 더 우람차다고나 할까. 청학과 백학이 다정하게 살았다는 학소대,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를 지나서 주왕이 숨어있다가 숨졌다는 주왕암엘 들렀다. 아침에 들은 방송 촬영 얘기에 주변을 살펴보니 오전 촬영은 이미 끝났고, 밤 촬영을 위해서 장비 설치만 되어 있다.
암자는 자그마하게 생겼지만 지붕위에 수북한 잡초들이 지나온 세월을 대변하는 듯하다. 암자를 지나서 주왕이 숨어 있다가 위에서 떨어지는 낙수물에 몸을 씻다가 신라 마장군이 쏜 화살에 숨졌다는 전설이 배어 있는 주왕굴에 다다르니 바위판 조각에 양각으로 새겨진 초상앞에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촛불이 켜져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바위 윗쪽에서 떨어지는 낙수물을 받아서 들이키니 마장군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자하교 근처 냇가에서 허기진 배를 해결하고 대전사에 다다르니 대전사 뒷쪽에는 우람찬 바위가 주먹을 불끈 쥔 형상으로 눈에 들어온다. 대전사는 고려태조 2년(919년)보조국사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명복을 빌기위해 창건한 절이라고 전한다. 거의 불타 버리고 보광전과 명부전 외에 2기의 석탑만 남아있다.
10월4일에 전두환 前대통령 내방을 환영한다는 플랜카드가 역사의 아이러니를 자아내게 한다. 매표소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시다.
2000.10.01(일) [다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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