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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한국땅

[스크랩] 우리 영토 대마도(對馬島)를 찾자 [종합정보]

by 고산마루(다올) 201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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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토 대마도(對馬島)를 찾자

일찌기 알고는 있었지만 정부는 왜 독도도 미온적이고 대마도는 언급도 않는 것인지..

 

 

대마도는 한국땅/이승만 전대통령, 日本에 수십차례 요구

 

작년 7.10 구로 산수원 산악회등(120명 대표 권죽실-선구자)의 백두산 등정을 마치고

광개토대왕(19대) 및 장수왕릉(20대)을 참배하게 되었는데 한민족의 후예로서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는 이야기 입니다.

 

전혀 보수없이 팽개치듯  방치되고 있어 대왕릉 봉분에는 잔듸대신 잡초만 우거저

있었으며 봉분에서는 토사가 유출되어 길을 가로막고 있으며 봉분에 오르는

나무계단이 파손되고 흔들거려 위험 천만 이었다.

 

경내 주변은 이름모를 잡초만 우거저 보는이들로 하여금 탄식을 금할수 없었고

호산산성 이라는 곳은 우리의 선조님들 께서 성을쌓아 나라를 지키고 종족을

보위 했던 곳인데 최근 많은 돈을 들여 재축조 해 놓고 그곳이 만리장성의

시발점 이라고 표시 하는등 당치도  않는 동북공정에 우리의 역사가 굴절되고

훼손 하는데 혈안이 되고있는 중국...

 

그리고 옛부터 일본은 겉으로는 값싼 기생웃음으로 친한체 하면서 돌아서면

이면수심 으로 남의 영토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일삼고 있습니다.

툭 던져보는 짓거리에 그때마다 따끔한 쓴맛을 보여주기는 커녕 마냥 순한 

양같은 한국은 제대로 항의 한번 않고 그저 눈치외교에 그치니 국민은 언제까지

울분만 삼키고 있어야 할까요?

 

대한민국 건국의 선구자 이승만 전대통령이 대일본 대마도 영토주장 이야말로

적절하고 실효성 있는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북한의 남침으로 중단되고 정치적 혼란으로 시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다음 정권이 승계받아 중단없이 주장을 했어야 하는데 정말 아쉽습니다.

지금이라도 관련 서류를 정리하여

영토 수호 차원에서 민관군이 합세하여 그주장을 관철 해야 할것입니다.

 

<여기 까지는  선구자의 한마디>

 


일본, 대마도가 조선 땅이란 공식 지도문서를 의도적으로 은폐 미국과 협상에서

국제공인지도로 활용, 미국-영국 지도도"대마도는 조선 땅"으로되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우리 지식인 중 일제 식민지 역사교육을 거치지 않고 서양에서

서양역사를 통해, 구한말 우리 역사와 일본의 한국 영토침탈 과정을 공부한

거의 유일한 지식인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8일과 1949년 1월 7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였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오래된 해상 경계가 있다”고 한 발언 중

‘오래된 해상경계“는 어디일까?


김상훈 대령(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은 11일 열린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 주최 제3회

이승만 포럼에서 “이 오래된 해상경계는 대마도와 일본 본 섬 사이의 현해탄”이라고 밝혔다.

즉 대마도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주장이다. 0여개 군도)제도에 대한

지도와 해설을 해놓았다.

사진의 지도는 독일인 클라프로토(Klaproth)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지도는 대마도가 명백한 한국 영토임을, 색으로 구분해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 프랑스어 판 지도의 국제적 가치는 호사카 유지 교수(세종대 독도연구센터 소장)의

일본어 논문 (三國通覽與地路程全圖』と‘伊能島’の 中の 獨島. 독도 창간호,

영남대 독도연구소. 2008)과 조선총독부 문서에 잘 기술되어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당시 일본 정부가 이 지도를 국제공인지도로 활용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 개국을 요구한 미국의 페리는, 오가사와라를 미국령으로 할 목적으로

이미 미국인을 군도에 살게 하였고, 이 사실을 들어 막부에 오가사와라를

미국령으로 인정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막부 측은,

임자평의 ‘삼국통람도설’과 그 삽입지도인 ‘삼국통람여지노정전도(삼국접양지도)’를

제시하였는데, 이를 미국이 인정하지 않자, 그 프랑스어판을 제시하여

겨우 미국의 영유권 주장을 물리친 것이다.”


즉 일본은 1861년 2월과 1862년 4월 미국의 해리스(Harris)대사, 영국의 알코크(Alcock)

대사 등 당시 열강 대사들에게 이 지도를 제시하면서, 국제적인 영토 분쟁의 공식

자료로 활용한 것이다.


김 대령은 “이 같은 미일간의 오가사와라 영토분쟁을 해결한 하야시 시헤이에 대해 해설서에는

'모든 일본인은 하야시 헤이시 선생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함. 광격천황께 바쳐져서

원본을 친히 열람하셨음.'이라는 표현이 있어 이 지도를 일본이 공식으로 인정한 것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김 대령은 “대마도가 조선령으로 기록된 삼국접양도를 이토오 히로부미도 알고

있었다”면서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고자 증거자료를 없애고 사실과 다른

자료를 19세기부터 지금까지 다량 배포함으로서

우리를 기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령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거나 박물관에 소장된 일본어판 <삼국접양지도>

(구글에도 있음)는 물론, 심지어는 일본 극우단체가 제시한 프랑스어판

<삼국접양지도> 조차도 모조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 대령은 또 미국 국가기록보존소에 보관돼 있는 미국 페리제독의 1865년

일본 지도를 함께 제시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미 의회 지시로 미-일 조약체결(1858년)에 따라

페리제독의 정찰결과를 토대로 일본의 지도를 작성하도록 지시한

미 국가기록문서소(NARA ;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당시 기록과, 1862년 미-일 영토협상 후 미국에서 작성된

1864~68년 일본 지도 역시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당시 영국지도에도 대마도를 우리의 영토로 표기하고 ‘대마도는 일본 영토에서

제외된다’고 지도에 직접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김 대령은 “한-. 일간의 해상 국경선은 일본지명사전에도 ‘고래로부터 일본과 한국,

대륙을 연결하는 통로’로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현해탄(玄海灘), 일본은 겐카이나다

(玄界灘 )으로 부르고 있는 곳, 즉,대마도 남단 한참 아래인 이끼섬과 일본 본토

사이”라며 “일본이 현재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의도는 대마도의

진실을 숨기기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령은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는 아직도 유효하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주; (윤정우 씀)

 

포럼후에 대마도반환추진국민운동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박수가 나왔습니다.

또한, 일본교과서에 1930년경부터 1945년까지 사용한 지도에, 대마도가 조선땅임을

색칠한 지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노신사의 발언도 있었습니다.

 

김대령은 6.25전쟁이 터지자, 이승만대통령은 우선 소련 공산당을 무찌를 때까지

일본에 대한 반환요구를 잠시 참자는 발언도 했다고 합니다.

아마, 상세한 포럼내용이 추가 보도 될것으로 봅니다.

 

최종편집 2011.05.11 18:48:52......온종림 기자

 

 

 

 

 

대마도 반환하라” 이승만, 日에 수십차례 요구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이 건국한 지 3일 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을 열고 대일 관계에 관해 중대한 발언을 한다.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대마도는 上島及下島(상도와

하도)의 二島(두 섬)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 영토인데 삼백 오십년 전 일본이

불법으로 탈취해 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대마도 한국 영유권' 발언에

당시 일본 요시다 시게루 내각이 반발하자

이 대통령은 9월 9일엔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을 발표, 영유권을 확인했다고 뉴데일리가

보도했다.

 

뉴데일리에 따르면 다음해인 1949년 1월 8일

연두 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대마도 반환문제를 강력히 제기한다.

이 대통령은 회견에서 "대일 배상문제는 임진왜란 시부터 기산하여야 한다"며

"특히 대마도는 별개로 하여 취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마도가 우리 섬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350년 전

일본인들이 그 섬에 침입하여 왔고 도민들을 민병을 일으켜 일본인과 싸웠다"며

"그 역사적 증거는 도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마도 여러 곳에 건립했던

비석을 일본인들이 뽑아다가 도쿄박물관에 갖다 둔 것으로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 비석도 찾아올 생각이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1949년 12월 31일 대통령 연말기자회견에서 거듭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마도 문제는 대일 강화회의 석상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일본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역사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력히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이 같은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는 약탈 문화재 반환 요구와 함께 한일회담 협상과

맞물리면서 60여 차례나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보도된 국내외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의

대마도를 반환받는 것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함께 중국 여론도 이 같은 주장을 지지하고 있었으며,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이를 지원하는 대규모 시위를 했던 사실 역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어떤 근거로 대마도가 한국 땅이고 해방-건국과 함께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실지(失地)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까?

 

김상훈 대령(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은 2008년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

정책 연수를 위해 1년간 머물렀다. 조지 워싱턴대는 이승만 대통령이 학부를 마친 곳.

건국대통령에 대한 관심을 갖고 조지 워싱턴대에서 1907년 청년 이승만의 흔적을 찾던

김 대령은 우연히 조지워싱턴대 도서관에서 이승만의 영문 저서

'Japan Inside Out'을 발견하고 탐독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책의 내용 중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오래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있다'라는

이 대통령의 언급을 발견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시절,

김 대령은 이'한-일 간의 오래 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어디를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승만이 건국대통령에 오른 뒤 기회만 주어지면"대마도를 불법 점거한 일본은 즉각

반환해야 한다"고 수십 차례나 주장한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수 년 간의 집요한 연구와 추적 끝에 김 대령은 이승만의 '대마도가 한국 영토'라는

주장의 명백한 근거를 찾았다. 그리고 왜 일본이 틈만 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도 밝혀다.


거리상으로도 우리나라가 훨씬 더 가까운 대마도는

옛날부터 조선인들이 많이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경인종합일보 임재신 기자] 의정부시의회 강세창 시의원이 지난달 20일 제223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대마도 실질회복을 위한 정부차원의 대응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것에 대해 세인(世人)들은 물론 SNS 누리꾼들의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2일 현재, SNS의 트위터 사이트에는 강 의원이 발의한 내용이 기사화 되어 트위터 누리꾼들이 리트윗(다른 사람 보여주는 것)해서 또 다른 누리꾼들에게 전달되어 독도와

대마도에 관심이 있는 수많은 누리꾼들이 공유하며 증가하고 있다.

 

특히, 트위터 대통령이라 불리는 소설가 이외수 작가의 트위터 계정에도 최근 ‘우리 땅,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글을 올려 대마도에 대한 관심은 더욱더 늘어날 추세이다.

강세창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의정부시의회 의원 8명이 연서 서명·제출한 결의안은, 최근 일본 시네마현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개최 등 계속되는 일본의 독도 침탈을 위한 영유권 주장을 재차 규탄하고 불법 강점한 우리의 고유영토인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 반환을

위한 정부차원의 대응을 촉구했다.

 

강 의원이 발의한 결의안은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임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고 영유권 확보를 위해 정부가 노력할 것, 일본의 독도 침탈을 위한 영유권 주장 규탄 및

대마도 영유권 주장을 위해 국회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 민ㆍ관ㆍ학계 등이 참여하는 대마도 실질회복을 위한 대책기구를 구성할 것,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 철회 및 대마도 즉각 반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트위터 누리꾼은 "우리 동네에도 의정부시의원 같은 분이 있다면 좋을 터 인데" 또 다른 누리꾼은 "의정부시의회 강 의원 국회의원으로~", 다른 누리꾼은 "의정부시의회 강 의원 대단 하십니다" "의정부시의회 대마도 영유권주장에 日언론 발끈?" 등

트위터 누리꾼들의 댓글과 리트윗이 이어지고 있다.

 

의정부시의회 강 의원이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일본 정부에 '즉각 반환할 것'을 촉구하자 급기야 일본 후지TV에서 강 의원에게 문의를 하는 등, 지난해 의정부시의회가 장기 파행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실추되었던 이미지가 SNS 누리꾼들로 인해 강 의원은 물론 의정부시의회가 화제의 중심에 놓여 있다.

 

강세창 의원은 취재진에게 ‘의정부에도 해결해야 할 시급한 현안들이 많이 있지만, 문득 최근 한·일 관계에 대한 TV뉴스를 접하고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작금의 일본의 행태에

독도는 물론 자주권도 빼앗길 판국’이라며 대마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겸연해 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맞서 최근 수년 사이 쓰시마(對馬島·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주장이 국내에서 제기된 가운데, 쓰시마 곳곳에서 ‘한국 흔적 지우기’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쓰시마의 대표적인 명물인 ‘거문고 마을의 거대 은행나무(琴の大銀杏·사진)’ 앞에 설치된

안내판에서 ‘백제에서 온 1500년 수령의 은행나무’라는 문장이 최근 ‘1500년 수령의

은행나무’로 바뀌었다. 높이가 23m, 둘레가 14m에 이르는 이 나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공식 인정받는 상징적인 나무다.

 

대마도의 개요

 

# 위  치 : 동경 129˚, 북위 34˚ # 거리 부산: 49.5km  후쿠오카 138km
# 면  적 : 708.66㎢(일본에서 3번째로 큰섬, 울릉도의 10배, 거제도의 2배정도
 # 인  구 : 대마도 총인구는 35,000명 이중 중심지인 이즈하라에 15,000명거주
 # 직  업 : 대부분 어업에 종사  전체면적의 89%가 산림지형 농경지는 1%정도
 # 지  형 : 남북 약82km  동서 약18km로 가늘고 긴 모양의 섬이다(남북2개섬)
    # 관광객 : 연70%이상이 한국인(조선통신사가 지나간곳등)
# 교  통 : 배 편(부산서 1일 3-4회)  항공기(김해공항 17인승 주1회)

# 없  다 : 대마도에는 백화점과 대학교가 없다 그래서 젊은사람이 적다.

 

대마도시청청사

이즈하라가 대마도 중심거리로 관공서는 이곳에 다있다

 

 

  

이즈하라읍내의  인도모습       

깨끗하고 보도브럭은 화강암으로 로면이 까칠까칠하여

미끄러지지 않는다

 

골목길 깨끗하다 - 휴지등 쓰레기가 없다

 

자동차 도로 - 노면이 고르고 잘 정비되여있다

 

도로변 담장도 잘 정비되다 - 쓰레기와 쓰레기통이 없다

 

개천도 잘 정비되고 물이 맑다

 

 

이즈하라 항구 물이 깨끗하다

 

도로변 자판기 자판기 천국답다 인근 휴식처 정비되다

 

건물이나 집앞에 소규모 화분등으로 정비하다

 

집앞 개인 신전 - 신을 모신다

 

집앞입구를 화분으로 정비하다

 

 

오래된 일본식가옥

 

이즈하라읍내 여러곳에 이런표지석이 있다

 

이즈하라읍내 파출소 규모는 작으나 순찰차량등이 있다

 

이즈하라 우체국 부산영도우체국과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한다 

 

대마도 이즈하라 면세점종업원은 한국말사용하나  물건이 비싼편이다

 

대마도 사진  

 

 

 

 

 

 

대마도는 우리 땅, 명백한 자료 공개

 

2012년 9월 25일 5시부터 50분간 진행한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참으로

충격적인,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인 자료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왜 일본이

허구 헌 날 자료 하나 없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지도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김상훈 현역 육군대령은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일본 막부가 미국과 영토분쟁에서

사용한 국제공인지도 <삼국접양지도>를 방송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김 대령님은

대마도 영유권 연구에 미쳐 몇 차례나 논문을 발표했고, 국회에서 특별강연도

하신 분입니다.

 

김 대령님이 대마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아시아문제

연구소에서 연수중에 이승만대통령의 자료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역사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졸업앨범사진과 관련 기술한 영문저서

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오랜 해상 국경선이 있었다...’라고 한 것 등을 보고

이를 추적하기 시작했답니다.

 

    대마도가 한국땅임을 표시한 프랑스지도(1) 조선팔도지도(2)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 15일) 사흘 뒤, 첫 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고, 그 후에도 수차례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더군요. 그 자료가

모두 공개됐습니다.

 

19세기 초. 중반이후 거의 모든 서방국가들의 지도에는 대한해협이 대마도 남단에

있었고 공개된 몇 장의 지도에도 모두 대한해협은 대마도 남단에 표시되고 있었습니다. 방송에 출연해 발언한 내용이 이렇습니다.

 

놀라운 것은 한일 간의 해상국경선은 대마도 남단도 아니고 실제는 대마도 남단 이끼섬의 남단으로부터 일본본토에 이르는 바다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현해탄으로 부르는 곳, 일본은 현계탄(겐카이나다)라고 부르는 곳으로서 ‘현’이란 동양의 오랜 음양오행에서 비롯된 4방향을 의미합니다.

 

즉, 북현무, 남주작 좌청룡, 우백호 중 북쪽을 나타내는 것이고 ‘계’란 바로 경계 ‘계’ 즉, 국경이란 의미가 있으며, ‘탄’이란 여울 즉, 바다를 의미하여 말 그대로 일본 ’북쪽 국경 바다’라는 겁니다. 일제강점기의 일본 백과사전에도 이 현계탄이란 일본과 조선의 오랜 통로하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마도 남단의 대한해협을 기록한 지도는 저도 몇부 가지고 있고 또 현계탄도 발음 그대로 적혀져 규슈 북방에 있으며 현계도는 일본 최북단섬이 되는 것입니다. 

일본 막부가 미국과의 영토협상에서 사용한 국제공인지도, ‘삼국접양지도’는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1738~93)가 1832년 제작했고 이후 독일인 클라프로토(Klaproth)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랍니다.

 

 

이 ‘삼국접양지도’ 원본이 공개됐습니다. 일본이 1832년판으로 제 외국과 협상을 했다고 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이것이 원본인 이유를 저는 3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오가사와라를 무인도로 한 것, 일본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것은 1부 뿐이라는 것, 지도를 제작한 당시 유럽의 동양 제 1학자인 클라프로토는 이 1부를 가지고 아시아를 10년 동안 정찰하였고 이 결과 작성된 1826년 판에도 대마도는 우리영토로 표기된 것 등입니다.

 

대마도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일본 천황도 알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증거자료도 공개됐습니다. 삼국접양지도를 일본 119대 천황인 광격천황이 열람하고 칭찬하였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광격천황은 역대 일본천황 중에서도 학식이 뛰어난 천황으로 알려져 있지요. 한 개인이 만든 지도를 천황이 보고 칭찬했다는 것은 그 가치가 대단한 것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1924년 발행한 것을 조선 총독부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었지요. 일본정부는 이 지도를 그 후 85년간 일본 국내외에서 공식지도를 시용하였음을

기록한 것도 찾아내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대마도의 가치를 잘 설명한 자료가 1930년 일제 강점기 일본 백과사전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일본학자의 논문을 통해보면 1855년부터 대마도는 영국대사가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해 가장먼저 식민지로 만들려고 군함을 두 번이나 보내 정찰했다는

기록이 있고 러시아도 이에 대해 선수를 뺏기지 않으려 했고, 미국도 야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가사와라 영토분쟁 때 대마도 분쟁도 함께 있었다는 것이지요.

 

대마도가 우리 땅인 게 확실하다면, 일본에 적극적으로 반환요구를 하고, ‘범국민 대마도 반환운동’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성민 진행자가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출연자 김 대령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국제법적으로, 그 이전에 국제신의에 입각해서도 확실한 자료가 나왔고, 일본이 이를 영토 반환에 최근 사용한 만큼

우리로서도 반환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는 국민의 의지입니다. 국민여러분께서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분야는 물론, 한국해(Sea of Korea)문제와 영문국호(Corea -->Korea)표기와 관련된 문제 등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기회에 저의 논문 표절하신 교수님과 국회의원님의 정중한 사과도 기대합니다.

표절자는 자수하세요(ㅎ)

 

김 대령께서는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한마디로 성동격서라고

했습니다. 아니 성서격동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제가 책에서 밝힌바와 같이 현재 일본에서 가장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한단체의 회장인 시모조 마사오 교수가 실은 대마도, 독도가 우리영토임을 잘 알고 있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우리 국민의 시전과 관심을 오직 독도에만 묶어두려는 것이지요. 우리의 시선이 독도에 머무는 한 대마도 문제와 대한해협, 이끼섬, 그리고 한일 간 오랜 해상경계선인 현해탄 문제는 덮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간계에서 독도도발은 지속될 것입니다.

 

이날 방송의 장성민 진행자의 클로징 멘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영토라는 역사적 근거와 사실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대마도를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역사적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의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대담을

계기로 추론해본다면, 일본은 우리나라로부터 대마도를 반환해달라는 요구를 사전에 차단하고, 대마도를 지키기 위한 영토 전략 차원의 선제적 방어조치로써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우리도 왜 대마도 반환운동을 본격화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우리 모두는 애써 찾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國家와 民族을 ♡하는 老宿者 입니다.
글쓴이 : 老宿者 원글보기
메모 : 대마도는 한국땅이라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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